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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 분석자료] 지유샤(自由社)교과서 들여다보기(28)

📷 아시아 태평화전쟁 미화

<본문내용>

– 아시아에 퍼진 독립에 대한 희망 : 일본의 첫 승리는 동남아시아와 인도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꿈과 희망을 주었다. 일본군의 파죽지세의 진격은 현지 사람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래 친일국이었던 태국에 더해, 싱가폴 등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된 영국군의 인도인 병사 가운데에서 인도국민군이 결성되고, 인도네시아와 버마에서도 일본군의 지도로 군대가 만들어졌다.


– 대동아회의 : 일본은 이들 아시아 각 지역에 전쟁에 대한 협력을 구하고, 함께 결속을 나타내기 위해 1943(쇼와18)년 11월, 도쿄에서 대동아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서는 연합국의 대서양헌장에 대항해서 대동아공동선언이 발표되어, 이 회의 이후 일본은 ‘구미세력을 배제한 아시아인에 의한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전쟁의 목적으로 강조하도록 되었다.


– 아시아제국과 일본 : 이 전쟁은 전쟁터가 되었던 아시아 여러 지역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특히 중국의 병사와 민중에게는 일본군의 행동으로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일본은 점령한 동남아시아 각지에서는 군정을 강요했다. 현지의 독립운동의 지도자들은 구미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달성하기위해 일본의 군정에 협력했다.


그러나 일본의 점령지역에서는 일본어 교육과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연합군과 결탁한 항일게릴라활동이 일어나 일본군은 이를 엄중하게 대처하고 일반시민도 포함해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또한 전쟁말기가 되어 일본의 전국이 불리해지자 식료품이 모자라거나 현지의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에 종사당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일본군이 패전으로 철퇴하자 구 종주국인 영국·프랑스·네덜란드는 바로 재지배하기 위해 되돌아왔다. 그러나 이들 식민지는 거의 십 수 년 사이에 연이어 자력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일본군 장병 중에는 패전 이후 현지에 남아 이들 식민지 독립세력에 가담한 사람도 있었다.(232-233쪽)


<수정의견>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일본 덕분에 독립운동이 일어난 것처럼 묘사한 것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서술이다. 당시 일본의 침략성은 마지막순간까지 한국을 독립시키려는 의사가 전혀 없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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