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 분석자료] 지유샤(自由社)교과서 들여다보기(31)


전쟁책임전가


<본문내용>

[칼럼 더 알고 싶다] 오키나와전․원폭투하․시베리아 억류


– 집단자결의 비극


1944(쇼와19)년 7월, 일본인 이주자가 많이 사는 사이판섬이 함락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적의 손에 잡히면 어떻게 당하는지를 주민은 목격했습니다.


수백 명의 주민이 미군에 의해 비행장 끝에 몰아넣어져, 여성만이 다른 장소에 끌려가고, 남겨진 아이와 노인은 가솔린을 부어 산채로 태웠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마피언덕을 향해 기암절벽에서 연이어 바다로 몸을 던졌습니다.


1945(쇼와20)년 3월말 미군은 케라마제도의 자마미섬, 도카시키섬 등에 맹렬한 공습과 함포사격을 가했습니다. 미군이 상륙하는 중에 막다른 지경에 몰린 주민이 가족단위로 집단자결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인의 집단자결은 소련군에게 침공당한 만주에서도 가라후토(사할린)에서도 일어났습니다.


4월, 오키나와본토에 상륙한 미군은 도망가려고 갈팡질팡하는 주민 머리에 폭탄을 쏟아 부었습니다. 동굴에 숨어든 사람들도 화염방사기로 용서없이 공격당했습니다. 이렇게 9만 4000명의 오키나와도민이 오키나와전에서 희생되었습니다.


4월 6일, 일본이 만든 세계최대의 군함인 전함 야마토가 오키나와 구원을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가고시마현 남쪽 방향인 동지나해에서 미군의 공격을 만나 대폭발을 일으켜 침몰했습니다. 함체는 지금도 수심 360M 해저에 잠들어 있습니다.


– 20세기 최대의 전쟁범죄


전시국제법에서 전쟁은 정규병사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싸우는 것으로, 무기를 가지지 않은 일반주민에 대한 무차별폭격은 전시국제법에 위반되는 전쟁범죄입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서도 본토에의 대도시 폭격에서도 많은 민간인이 표적이 되어 사망했습니다. 1945년 3월의 도쿄대공습 때, 공격명령을 받았던 B29파일럿은 ‘이것은 국제법위반이 아닌가’라며 사령관에게 따져 물었다고 합니다. 도쿄대공습에서는 하룻밤에 10만 명이 타 죽었습니다.


미국에서는 20세기의 100대 뉴스 중 제1위에 ‘원폭투하’, 제2위에 ‘진주만’(일본에 의한 진주만공격)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인의 60%이상이 ‘원폭투하는 정당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2009년 조사). 그 이유는 ‘전쟁을 빨리 끝내기위해서 필요했다’, ‘원폭을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미국인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등의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원폭투하에 의한 사망자는 히로시마에서 약 20만 명, 나가사키에서는 약 7만 명으로 희생자는 일반시민이었습니다. 원폭투하는 그 피해규모에서도 20세기 최대의 전쟁범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92년 미국의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원폭전’계획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앞의 대전에 대해 일본은 자위적인 측면에서 개전에 이르렀다고 기술된 기획서가 분명해지자 재향군인회를 중심으로 한 반대운동이 일어나 기획은 중지되었습니다.


– 시베리아 억류


8월 9일, 소련은 일본과의 중립조약을 무시하고 만주에 침입해 일본 민간인에 대해서 약탈, 폭행, 살해를 반복했습니다.


더욱이 포로를 포함한 약 60만 명의 일본인을 시베리아로 연행해, 가혹한 노동에 종사시켜 약 6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러한 연합국측의 전쟁범죄는 일절 재판받는 일은 없었습니다.(238~239쪽)


<수정의견>

일본의 전쟁피해를 강조하여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고 심지어 미국이나 연합군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는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서술이며, 독립을 위해 일본에 맞서 싸운 한국의 독립운동도 함께 폄하하는 서술이다. 일본의 전쟁책임과 함께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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