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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제16회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 (학생 소감문)

2017 캠프 한국 학생대표



학교 선생님께 캠프를 소개받아 40명 안에 못들면 어쩌나 마음 졸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캠프가 끝났다니 믿기지 않는다. 처음 캠프에 지원할 때 아니 심지어 캐리어와 짐 가방을 메고 숙소에 처음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래도 5박 6일은 좀 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캠프가 끝나고 나니 5박 6일이 길기는커녕 한 달 동안 합숙을 해도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친구 한명도 없이 혼자 참가했고 이런 외부 캠프는 처음이라 친구를 어떻게 사귀면 좋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서로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고민을 나누며 두루두루 금세 친해진 것 같다. 작년 캠프에 참가했던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왜 이 캠프를 좀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하는 후회가 들었다. 참가자 친구들 중에서는 고등학생이 꽤 많은 편이였는데 ‘역사’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서로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캠프 첫날에는 5일동안 같은 방에서 지낼 룸메이트가 일본인 친구 2명이라는 것을 알고 걱정이 참 많았다. 사실 작년에 학교에서 제 2외국어를 선택할 때 나는 중국어 반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본어에는 자신이 없어 이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룸메이트 중 한 친구가 한국어를 수준급으로 할 줄 알았고 나머지 한 친구도 영어를 꽤 하는 편이어서 5일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올해 캠프는 정말 ‘역사캠프’라는 이름에 걸맞게 역사와 관련된 활동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강의도 여러번 듣고, 탐방도 여기저기 다니고 여러 가지 토론,조별 활동도 했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중일 연표 만들기 활동과 전쟁기념관 탐방, 조별 시티투어이다. 한중일 세 나라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만큼 예로부터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만큼 갈등도 많이 있었다. 특히 역사에 있어서 서로 상반되는 시각과 해석으로 빚어지는 갈등도 많았다. 이 캠프가 한중일 청소년들이 한 데 모이는 자리이니 만큼 일본.중국 친구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얘기해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연표 만들기를 통해 그러한 얘기들을 나눠볼 수 있었다. 국가 별로 나누어 1800년부터 1950년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 10가지를 뽑아 큰 전지에 쓰도록 했는데 우리 조 한국친구들이 뽑은 사건 10개는 강화도 조약, 갑오개혁.동학 농민 운동, 을미사변, 을사조약, 국권피탈, 3.1운동, 광주 항일 학생운동, 8.15 광복, 한국전쟁이었다. 다른 나라 친구들이 뽑은 사건 중에는 우리나라와 겹치는 것도 있었고, 중.일이 겹치는 사건들도 많이 있었다.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같은 사건일지라도 각 나라별로 이를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명성왕후가 시해되었던 사건을 을미사변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에서는 민비 살인 사건이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청일 전쟁, 일본에서는 일청전쟁이라고 부르는 등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달라지는 것을 보고 역사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니 하나를 보고 단정짓지 않고 여러 가지 해석들을 접해보고 이를 비판적으로 잘 따져본 후 받아들여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프 셋째 날에는 많은 곳을 답사했는데 그중 제일 먼저 갔었던 전쟁기념관이 인상적이었다. 전쟁기념관 관람의 포인트는 낯설게 보기였다. 사실 나는 전쟁기념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기 때문에 이곳에 자주 오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익숙한 곳을 어떻게 낯설게 보라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서인지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예전에 전쟁기념관에 왔을 때에는 숙연하고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전시실 여기저기 적힌 글들도 읽어보았다. 그 중 ‘평화로울 때 전쟁을 대비하라’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나는 사실 이 말에 반대한다.


평화로울 때는 평화를 마음껏 만끽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평화로울 때 전쟁을 준비해 언제든 싸울 수 있게 되는 것은 결국 평화를끝내는데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벽면에 적힌 문장 하나까지 꼼꼼하고 낯설게 보려고 노력해보니 여기가 정녕 내가 자주 왔었던 전쟁기념관이 맞나 싶었고 색달랐다.


넷째 날에는 조별 시티투어를 진행했는데 우리 조는 경복궁, 국립 고궁 박물관, 통인시장에 다녀왔다. 종로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자주 오갔던 곳을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다녀올 수 있어서 좋았다. 경복궁을 여러번 가보았지만 수문장 교대식을 본적은 몇 번 없는데 이번에는 운이 좋았는지 끝부분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경복궁에 가면 근정전, 경회루까지 보고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깊은 곳에 있는 건청궁과 향원정까지 다녀왔다. 건청궁이라는 건물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을미사변 때 명성왕후가 시해되었던 장소라고 한다. 건청궁 안에 들어가 보니 명성왕후의 생애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었다. 경복궁을 빠져나와 통인시장에서 점심을 먹은 후 국립 고궁 박물관 조선의 국왕 전시실을 일본인 친구 2명과 관람했다. 일본 친구들에게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부족한 실력이나마 열심히 설명해 주었는데 귀를 기울여 잘 들어주는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일본어로 설명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이것 외에도 했었던 많은 활동들,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 나누었던 즐거운 대화들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남지만 다 말하기는 너무 너무 기니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선생님의 소개로 우연히 참가하게 된 캠프에서 한.중.일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어 정말 기뻤다. 용기 내 도전했던 한국 학생 대표에도 뽑혀 개.폐막식 때 연설도 하게 되었는데 사실 대표로서 5박 6일 간 좀 더 적극적으로 다른 친구들을 챙기고 이끌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은 많이 아쉽다. 이 캠프를 통해 언어와 국적은 친구가 되는데 전혀 큰 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스스럼 없이 먼저 말을 걸어주고 다가와준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 이제 10대의 끝무렵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왜 좀 더 전에 캠프를 알지 못했을까하는 후회가 가장 많이 남는다. 내년이면 고3이라 힘들 수도 있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참가하고싶다. 이번 캠프에서 만들었던 소중한 인연들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일본,중국 친구들도 언젠가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영 부영 한 것 없이 의미없이 지나갈 뻔한 내 여름방학에 이 캠프를 가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였던 것 같다. 올해 참가하지 않았으면 어쩔뻔 했나 싶다. 캠프 동안에 사귀었던 많은 친구들과 추억들은 평생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주변에 다른 동생.친구들에게도 참가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훗날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스태프 쌤들처럼 이 캠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때는 일본어.중국어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역사도 술술 설명해 줄 수 있을만큼 멋진 어른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 캠프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신 조한숙 선생님과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처음에 동아시아 역사캠프라는 것을 들었고 그 안에 세 나라 친구들 간의 패널 토의라는 부분이 있길래 나는 우리가 이제까지 학교에서 해오던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주제를 던져주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애들은 우물쭈물하고 서로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분위기에 묻혀서 말을 못꺼내고 선생님의 주도로 진행되며 그냥저냥하다가 5박6일이 휭하니 지나가는 식상한 캠프인줄로만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캠프에 지원했었던 이유는 중국과 일본의 두 나라에의 학생들이 온다는 것에서 오는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이고 한국 친구들의 경우에도 특정 지역이나 학교에서의 친구들이 아닌 이 캠프가 아니면 인생에서 만나지 못했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지원했고, 가장 큰 이유로는 평소에 역사문제에 관심이 많고 뉴스나 신문에 기사가 뜨면 주의 깊게 보는 편인데 이러한 매체들을 통해서 역사문제들을 알 것이 아니라 세 나라의 학생들이 모여서 서로 같은 문제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말하다 보면 어떠한 결론이 나올지에 대해서도 궁금했기 때문에 지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걱정 혹은 편견 같은 것은 캠프 첫 날 중국과 일본의 친구들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선, 일본과 중국 친구들의 성향이 상당히 개방적이어서 한국 친구들과 얘기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낯을 가리거나 하지 않았고(우리 조에 두 번, 세 번 왔던 친구들이 있어서인 이유도 있을테지만) 덕분에 새로 만난 외국 친구들과도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고 앞에서 말했던 패널토의에 대한 나의 우려도 사라지게 되었던 것 같다(사실 이번 캠프가 처음이라서 패널 토의가 내가 생각한 토의가 아니어서 쓸데없는 우려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정에서 활동 후에는 항상 조별 패널 토론이 있었는데 나는 이 시간에 중국과 일본의 학생들과 삼국의 역사문제에 대해서 치열하게 공방이 오고가는 토론인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어떠한 사건이나 문화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후에 그와 관련된 각자의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어서 매우 흥미롭고도 유익했다. 나는 자칫하면 서로에게 안좋은 감정을 남길 수 있는 치열한 토론보다 이렇게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서로의 문화에 대해 알고 배울 점은 배우고 물어볼 것은 물어보고 우리의 고칠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하는 이런 방식의 토론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캠프를 하기 전에 우리학교 역사 선생님이 이 곳에 오는 일본 학생들은 일본에서 진행하는 정책과는 달리 올바른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니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처음 캠프고 평소에 일본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서 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일본 친구들의 일부는 왜곡된 역사를 옳다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캠프에 와보니 이곳에 온 친구들은 모두 자신들의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중 일부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일본’이 싫다고까지 했다. 이에 일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전환되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중국의 교과서에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 갈등인 동북공정에 대한 내용이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중국의 어떤 학생은 동북공정을 배워보지 못해서 그것이 존재하는 지도 몰랐다고 하기도 했다.


캠프가 진행됨에 따라 이 캠프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름은 역사캠프였지만 조별활동(네 번째 날) 패널토의, 패널토론, 역사 강의를 제외한 시간에는 역사적인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거나 나누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캠프의 역사 강의나 역사에 대해 지식을 전달해주는 부분이 미약해서 캠프가 의미 없었나는 뜻이 아니라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 따라서 나는 이 캠프의 목적이 단순이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 나라의 친구들이 서로 이야기 나눌 시간을 두어서 같이 지내며 화합을 이루고 우리 세대에서부터 역사문제로 얼룩져 있는 세 나라의 서로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미래의 세 나라는 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 시작을 이 캠프부터 해보자 하는 의미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이 캠프의 목적을 내가 잘못 알아서 5박6일간 잘못 느끼고 잘못 체험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캠프는 그런 의미가 있고 세 나라의 화합을 꿈꿔볼 수 있는 희망을 나에게 전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잊을 수 없는 체험을 다시하기 위해서 기회가 된다면 다음캠프에도 참여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좀 힘들더라도 스태프로서도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별생각하고 간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모든 것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남한현대사는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배우고 공부해온 분야였기 때문에 이번 캠프로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를 얻지는 못했고, 오히려 표면적으로만 이를 학습시키는 것 같아 아쉬웠다.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도 큰 관심이 없어보였다.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참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타국의 친구들을 만나는 체험에 더 기대를 두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역사수업과 마찬가지로 삼국이 ‘함께’한다는데 중점을 둔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토론에 있어 적극적이지 못한 분위기, 얕은 깊이 등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에도 조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잘난척하는 괴짜가 되는 기분이어서 나도 입을 잘 안 열게 되었다. 어쩌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소통이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지 않은 것과 별개로 진행된 프로그램들은 다 좋았다. 강의 같은 경우에도 유익했다. 특히 참여적인 분위기를 유도해준 ‘피스모모’의 프로그램 시간이 좋았다.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으니까. 이러다 보니까 이야기하는데 환장한 사람 같아 보인다.


일정의 경우 너무 쉴 틈 없이 짜이지 않았나 싶다. 점심시간 저녁시간도 촉박하고 그러다보니 오히려 일정들이 딜레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차라리 넉넉한 여유시간동안 준비를 하고 깔끔하게 시작하는 게 나은 것 같다. 외부활동도 코스가 많았던 건지 이동인원이 많았던 건지 더운 날씨에 진행하기에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 아쉬웠다.


친구들과의 사교시간이 따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타국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중국학생들이 많이 오지 못해서 비율이 잘 맞지 않았던 게 좀 그랬다. 솔직히 한중일 캠프보다는 한일캠프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다음 캠프의 경우 초반에 자유친목시간이라도 갖는 게 어떨까 싶다.


애들이 친해지려고 하다보니까 잠잘 시간에 서로 방을 드나들며 놀곤 했는데 거기에 대한 조치가 빈약했다. 첫날과 이튿날까지는 자제시켰지만 애들도 말을 너무 안 듣고 스태프들도 단속을 포기했던 것 같다. 결국 다음날 프로그램에 따라가지 못하고 컨디션 조절이 안 돼서 아예 아픈 친구들도 생겨났다. 듣기에는 아예 스태프들이 애들한테 술까지 가져다줬다고 하던데 이건 진짜 아닌 것 같다. 좀 무서웠다. 무슨 사고라도 날까봐. 친구들 따라 덩달아 못 자서 좀 힘들었다.


스태프들이 진짜 너무너무 고생하는 것 같다. 진짜 애기들도 아니고 자기 쓰레기 정도는 자기들이 치우도록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스태프는 이 활동에 봉사하는 거지 학생들에게 봉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돼서 내가 괜히 억울했다. 학생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자율적으로 하게 했으면 좋겠다. 스태프들이 당연하다는 듯 애들 도시락 잔반처리 하는 거 보고 속으로 경악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일단 여러 친구들과 무언가 만들고 준비하면서 새로운 느낌의 친목을 다질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일본인친구들이 다들 친절하고 귀여워서 같이 노는 게 아주 즐거웠다. 또 여러 프로그램(전쟁기념관, 강의, 평화교육, 모둠별활동)을 통해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해 더 생각하고 고민해볼 수 있어서 스스로 성장의 기회가 되었던 것 같지만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감상을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결코 완성된 것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걸 늘 상기시키며 임해서인지 수업 내용이 조금씩 아쉬웠다. 87년을 승리로 해석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함께 집중적으로 배웠더라면 더 유익했을 것 같다.


차라리 좀 더 깊게 들어가서 찬반이나 반박토론까지 갈 수 있었다면 객관적이고 상투적인 의견 외에 더 독창적이고 고유적인 의견이 오갈 수 있었을 텐데. 이건 내 쓸데없는 과욕인 것 같고 별난 성격 탓에 캠프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마지막까지 힘들었다. 그래도 마음씨 착한 친구들과 스탭언니오빠들 덕분에 미움 받거나 외톨이가 되지는 않았다. 조를 잘 만났던 것 같다. 스태프들도 진짜 다 친절했거든.


자꾸 쓰다 보니 소감이 아니라 평가문이 되는 것 같아 읽는 입장에서 상당히 기분 나쁠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전반적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감상이다. 뭔가 되게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아 보인다면, 맞다. 불만도 많았고, 문제제기도 많았는데 그런 것과 상관없이 친구들 만나는 거, 작업수행 하는 거 다 즐겁고 느낀바가 많긴 했다. 다양한 방면의 성장을 노리는 거니까. 인내심이든, 정상인체험이든. 내년에도 가고 싶다. 진짜 하얼빈이라면 더더욱.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캠프를 하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가장 재미있던 활동을 생각 해 보니 수요일이 제일 재미있었던 활동이었던 것 같다. 수요일 오전에는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서 ‘낯설게 보기’라는 활동을 하였다. 처음에 이 활동을 할 땐 매우 어색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전쟁에 대한 나의 관점들은 이미 고정되어있었는데 내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는게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씩 천천히 내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보니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보니 매우 신기했다. 수요일 오후에는 광화문 광장에 갔었던 것이 제일 인상 깊었다. 광화문 광장에 가서 세월호 참사 현장이 담긴 부스에 갔었는데 볼 때 마다 매우 마음이 아팠지만 그 아픈 마음을 한중일 모두가 같이 나눌 수 있어서 매우 뜻깊었던 활동이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전혀 알지 못 했던 것들을 알게되었고 항상 모든 활동들을 한중일 모두가 얻어가는게 많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 활동을 통해 후회하는 것, 아쉬운 것들은 전부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


한중일 역사캠프에 참가하고 나서 예전보다 역사적 배경지식이 쌓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태까지 역사 공부를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시험공부 위주로 외우는 것 처럼 공부를 할 때가 많았는데, 역사 캠프에 참가해서 직접 활동에 참여하고 박물관 등을 견학하니까 오래된 역사라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 공부를 할 때도 역사라는 과목이 너무 딱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충분히 이해하며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여태까지와 다르게 최근에 본 기말고사에서 처음으로 역사 점수가 올랐는데,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평소보다 시험공부를 조금 더 일찍 시작해서 였다. 다음 중간고사에는 일찍 시작함과 동시에 역사 캠프에 다녀왔던 것을 계기로 하여 이해를 충분히 하고 공부하면 성적이 더 오를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하였다. 성적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처럼 역사캠프가 여러모로 나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너무나도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참여해보고 싶다.



저는 작년에 홋카이도에서 열린 역사 캠프를 참가하고 좋은 추억을 갖게 된 기억이 있어,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캠프 역시 참가했습니다.


3시 조금 넘어서, 서울 하이 유스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하 1층까지 가기 전까진 분위기가 어떨지 몰라 잔뜩 긴장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전 교육 때 만났거나 작년에 만난 익숙한 얼굴들이 있어 긴장을 풀고 옆에 있던 언니와 이야기도 하고 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모두 올려놓고 조금 쉰 다음 다시 지하 1층으로 내려와 조금 기다리니 중국, 일본 친구들이 숙소에 도착해 얼굴을 보이러 왔습니다. 일본보다 중국 측 학생이 먼저 도착했고 한 여학생이 우리 조 테이블로 왔습니다. 올해는 사드 관련 문제로 중국 학생이 10명만 참가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혹시 낯설어할까 걱정되어 말을 먼저 걸어봤는데 너무 다정하게 대답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조금 있다가 일본 측 학생 3명도 저희 테이블로 왔습니다. 고정관념이랄지 모르겠지만 일본인은 항상 친절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저희 조로 온 일본인 친구들은 정말 친절하게 저희를 대해주어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첫 중․일 친구들과 첫 만남을 갖고, 개회식과 아이스 브레이크라는 이름의 레크레이션을 한 후 하루가 끝났습니다. 다음 날이었던 화요일은 정말 하루 종일 공부의 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강연자님들 어려운 사건들도 알기 쉬운 말로 바꿔주시고, 영상도 많이 준비해 주셔서 흥미롭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날 연표 만들기 라는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각 나라마다 자신들의 역사교육에서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10개 정도로 모으고 한․중․일 세 국가가 한 곳에 시대별로 역사를 정리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각 나라마다 자신들이 중요하다 생각했던 역사가 모두 다르고, 붙어있는 세 나라답게 특정 한 국가에서만 영향을 미칠법한 일들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기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날이었던 수요일은 답사의 날이었습니다. 용산 전쟁기념관 낯설게 보기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답사를 갔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후에 토론과 점심식사를 위해 사전 모임의 장소였던 용산중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서너번 와봤다고 익숙해진 듯해 신기했습니다. 세 번째로 명동 성당으로 갔습니다. 화려하기만 해보였던 건물에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담겨있다니 놀라웠고 차례로 지나간 향린교회, 서울 시청 광장도 그러한 역사가 머물고 간 자리임에 새삼 낯설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밤엔 남산으로 투어를 갔었는데 가는 동안 탔던 버스에서 버스 기사님이 TV로 노래방처럼 해주셔서 가는 길마저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마니또 뽑기에서 제가 저를 마니또로 뽑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 바람에 제가 직접 한 스태프를 지정해 마니또 역할을 해줘야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희 조 중국어 통역 담당이셨던 허희라쌤께 마니또를 해드리기로 생각하고 드릴 선물을 남산에서 샀었습니다. 그렇게 선물도 사고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다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마쳤습니다. 네 번째 날엔 준비해주신 교통카드를 가지고 저희가 직접 서울을 투어하는 일정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저희는 경복궁-고궁박물관-서촌, 통인시장 코스를 뽑았고 그날 7.6KM를 걷게 되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각자 조들이 답사했던 곳들의 지도를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잘 될까… 하던 우려와는 다르게 멋지게 완성된 지도를 보고 흐뭇해진 기억도 납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조금 더 보내고 다섯 번 째 날인 금요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장기자랑과 오픈 카페가 가장 깊게 기억 납니다. 장기자랑에서 건우라는 친구가 대단한 음정박자 기술로 ‘Tears’ 라는 노래를 불렀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노래도 듣고 하다보니 장기자랑이 끝나고 오픈 카페가 찾아왔고 일본과 중국의 먹거리도 즐겨보는 등,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지막날 밤이 거의 마무리 되어갔습니다. 모든 공식 일정이 다 끝이 나고, 저는 자유롭게 저희 조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사고도 ( 일본인 친구 핸드폰 액정을 깸 ) 치고 정말 절대 잊지못할 밤을 보내고 새벽 3시 쯤에 잠에 들었습니다. 헤어짐만이 남은 마지막 날, 중국인 친구들 환송시간에 다른 일을 하다가 중국인 친구들을 환송하지 못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도 어찌 저찌 일본인 친구들은 환송했는데 다들 울고 껴안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음에도 참 안타까웠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인들과는 다음 뒤풀이 때 만날 것을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는 길에 지난 6일간의 일들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작년보다 뭔가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이 빡빡했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 좋은 관계를 형성했음에 기분이 좋아 발걸음마저 가벼워 졌었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갖게 해 주신 한․중․일 관계자 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


먼저 이런 뜻 깊은 캠프에 참가하는 것을 권유해준 애린이 에게 고맙다.


이런 캠프가 있다고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친구가 이 캠프에 같이 가자고 권유하기 전까지는 이런 내용의 캠프에 내가 가리라곤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첫날에는 많이 긴장도 되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엄청났다. 것보다도 다른 나라 친구들과도 친해져야 하는데 언어도 다 달라서 그나마 통하는 것이라곤 영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영어를 진짜 너무 정말 못해서 ‘아, 이번에는 망했구나.’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쌓아둔 자투리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보니 중국친구들이 왔는데 그중에서 눈에 띄게 예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눠런’이라는 친구이고 애린이네 조였다. 진짜 키도 크고 옷도 잘 입어서 눈이 저절로 가는 친구였다. 우리 조에 온 친구는 ‘쟈니’라는 친구인데, 이 친구는 모국어인 중국어는 당연하고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조금의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친구였다. 이전 캠프에 참가한 언니들의 말을 들어보니까 중국친구들 중에서 영어도 못해서 통역사를 옆에 달고 살았던 일도 있었다고 했는데 우리 조에는 똑똑하고 귀여운 쟈니가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 다음 일본 친구들이 왔는데 딱 들어왔을 때 염색을 한 너무 아기자기하게 귀엽게 예쁜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와키나’라는 언니인데 그냥 와카짱이라고 부르는 언니인데 그언니도 6조였다. 6조에는 또 ‘마리아’라는 언니가 있었는데 작년 캠프에 참가했었다고 한다. 진짜 한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발음도 좋은 언니라서 금방 친해졌는데 마리아언니랑 얘기하다 보니까 어느새 와카짱이랑도 친해져 있었다. 일본에서도 프로듀스101 시즌 2가 유행해서


말할 것도 많고 해서 재미있었다. 우리 조에는 일본인 여자친구 두명과 남자친구 한명이 왔는데 여자친구들의 이름은 ‘이부키‘와 ’스즈네‘였고, 남자친구 이름은 ’신세이‘였다. 일본인 친구들이 온 학교는 모두 같았는데 그 학교가 되게 좋은 학교여서 친구들이 다 영어를 잘해서 그나마 얘기도 많이 했다. 그렇게 친구들이 다 오고 나서 각자 룸메이트들을 찾아서 방에 짐을 풀고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그다음 다시 홀로 모였는데 이번에는 아이스 브레이크라는 이름의 레크레이션 비슷한 것을 한다고 했다. 하면서 아이엠그라운드를 하며 서로 어색한 것도 풀며 놀았는데 그때 신세이가 너무 웃겨서 신세이랑도 친해졌다. 그날 밤 같은 방을 쓰게 된 오래알고 지낸 서희와 라면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가 내가 서희한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뛰어날 것이고 착할 텐데 괜히 내가 피해를 끼칠 것 같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피해만 주는 것 같아 뭔가 요즈음 들어서 움츠러들어 있어서 그런 고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니 앞으로의 날들을 걱정만 하고 있었다.


두 번째 날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강의를 듣기 전 조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식권도 주고 나의 기대를 채우다 못해 넘치게 하는 음식들이 있어서 신나서 사진도 찍으며 조원 언니들과 친해지며 그나마 긴장이 풀렸다. 밥을 먹고 강의를 들으러 다이아몬드홀로 내려갔다. 홀 앞에서 기다리는데 홀에 들어가기 전에 스태프 분들께서 빵도 주시고 물도 주시는 것에 신나서 들어갔더니 테이블 마다 과자가 많이 담긴 접시가 올려져있는 것을 보고 정말 신이 났다. 자리에 앉았는데 내 옆자리에는 바로 옆 조인 이 캠프를 추천해준 애린이가 앉아있었다. 둘이 신나서 과자도 바꿔먹으면서 놀고 있었는데 큰 플라스틱 박스에 무전기 같이 생긴 것을 스태프 분들이 나눠주셨다. 알고 보니 그건 동시통역기라는 것인데 강의가 한국어로 진행되는데 1시간 정도 하다보니까 돌아가면서 한 번씩 통역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려서 나눠주는 것이라고 했다. 채널 1번은 한국어, 2번은 중국어, 3번은 일본어였는데 나는 굳이 안 써도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뭔가 아까워서 일본어 채널도 들으면서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계속 강의를 듣고 토론하고 듣고 토론하고를 했더니 어느새 밤이라서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세 번째 날에는 밖에 나가서 하는 활동이었다. 전쟁기념관에 갔다가 용산초등학교에 가서 토론하고, 명동성당에 갔다가 서울시청일대에 가서 공정무역카페에 가서 스무디도 먹고 광화문 광장에 가서 세월호참사 추모도 하고 이순신동상과 세종대왕동상도 보고 역사박물관 옥상에 가서 사진도 찍고 전망도 보고 하다가 명동에 가서 자연별곡에서 저녁도 먹고 남산에 갔다. 남산에 가서 혜윤언니랑 서희랑 나랑 수하랑 돌아다녔는데 애린이랑 문영이가 같이 다니자고 해서 우리가 있는 층으로 내려오라 했는데 한 30분이 지나도 안 와서 그냥 우리가 올라가서 봤더니 내려갔는데 없어서 그냥 올라와서 놀았다 해서 싸울 뻔 했지만 서로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냥 넘겼는데 그동안에 쌓인 것도 많고 힘든 일도 많았던 서희는 쉬고 싶었는데 못 쉬었다고 나한테 숙소에 가는 길에 징징대다가 버스에서 노래방처럼 노래도 부르더니 그대로 뻗어버려서 조용히 갔다. 숙소에 도착했더니 스태프 분들께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셔서 행복하게 받아서 방에 가서 씻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잤다.


네 번 째 날은 조별 시티투어였는데 캠프에서 교통카드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