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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역사를 통해 만난 또 다른 일본

역사를 통해 만난 또 다른 일본

이 효 성(건국대학교)

한일유스포럼의 참가자로서 도쿄에서 보낸 4일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여행과 유학으로 일본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이번 포럼 참가를 위해 방문한 일본은 여러모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여행 중에는 주로 관광지나 맛집 위주로 일정을 짜기 때문에 화려한 일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유학 시절에는 좀 더 일상적인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올바른 역사 인식 아래 한일관계를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과정에서 일본, 일본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에 도착해서 처음 방문한 곳은 일본 국회의원 회관 앞이었다. 짐가방을 끌고 가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볼멘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회관 앞에서 비를 맞으며 농성을 하고 계신 분들 보니 숙연해졌다. 참가자의 대부분이 어르신이었고, 그 중에는 종교 단체, 노동 운동 단체 등 다양한 집단이 모여 현 정권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계셨다. 침착하고 질서 있는 모습이었지만 강한 뜻이 느껴졌다. 이번 도쿄 일정 중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숙소로 돌아가 유스포럼 사람들과 합류하여 야스쿠니 신사로 갔다. 말로만 듣던 그 야스쿠니 신사를 가게 된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긴장이 느껴졌다. 신사의 커다란 규모에 한 번 놀랐고, 많은 방문객 수에 또 한 번 놀랐다. 신사 내 자료관은 근대부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는 침략을 합리화하는 내용이 다수 눈에 띄었다. 특히, 특별 전시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령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코너는 충격적이었다. 현대 일본인들이 본인들을 태평양 전쟁 참전 군인의 가족으로 가정하고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시하고 있었다. 내용은 당연히 가족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것으로, 거기에 전쟁에 대한 원망이 있을지언정 책임감이나 반성이 담겨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특별전의 기획 의도 역시 가해의 기억보다는 피해의 기억만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해 씁쓸했다.



이번 포럼의 핵심 행사는 20일의 한일재구축캠페인 2015․ 유스포럼『함께 만들어요 재구축 프롤로그』였다. 오전에는 우츠미 아이코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오후에는 워크샵이 있었다.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역사 인식, 위안부 문제, 언론 보도, 독도 문제 네 가지가 거론되었고, 각각 팀을 나눠 이에 대해 토론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각 사안에 대한 한일 학생들의 진솔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어 좋았다. 이런 워크샵이 일회성의 이벤트처럼 끝날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한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발전해나갔으면 하는 의견이 있었는데, 나 역시 좀 더 자주 교류를 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렸던 21일에는 마지막 공식 행사로 한일 학생들이 다함께 액티브 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에 방문했다.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은 여성국제전법법정을 발안한 고 마츠이 야요리(松井やより)씨의 유지를 이어받아 설립된 곳으로 전시 성폭력을 기억하고 이를 위한 활동들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인 설명과 구체적인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WAM 사무국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 내에 전쟁 시기를 다루는 박물관은 많이 있지만 잔혹 행위에 대한 기록은 삭제하는 등 가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 측에서 문서 형식이 아닌 피해자 증언은 피해의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가해 사실을 축소하려 하고 있는 것에 대해 큰 분노를 느끼고 계셨다. 전쟁 중 피해가 문서로 일일이 작성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서라고 해서 항상 완벽한 증거로 성립하는 것도 아닌데 정부에서는 문서만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10년 동안 자료관을 운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침묵을 깨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증언해주신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그리고 이러한 가해와 피해의 사실을 명백하게 밝히고자하는 마음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자료관을 관람하면서 문득 야스쿠니 신사가 떠올라 씁쓸해졌다. 하루 평균 천 명이 방문한다는 야스쿠니 신사와 1년 방문객이 천 명이라는 이 자료관의 상황을 대조해보니 이대로라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 나아가 한일 관계가 개선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후 70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롯한 전쟁 피해자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평행선을 유지하는 한일 정치 관계나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내놓는 후생노동성을 보면 피해자분들의 여생동안 이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국회의원 회관 앞에서 농성하는 수많은 시민들과 한일관계재구축 캠페인의 거리 데모에 참가하고 응원하던 시민들을 떠올려 보면 분명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지난 외교장관회담 이후 많은 언론에서 한일 관계 화해 분위기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이번 포럼을 통해 진정한 화해의 움직임은 시민들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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