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제17회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 8.1일 소감문

고3 여학생 소감문


5일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의견을 나눴고 함께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토론시간’, ‘버스 안’, ‘탄광’이었다.



<토론시간>

첫 번째 토론 주제는 ‘한중일 역사교육의 공통점과 차이점’ 두 번째는 ‘한중일 공통적인 역사, 문화, 전통’ 세 번째는 ‘식민지시대의 유적을 보존하는 것에 대한 문제’였다.


① 발표 때 보니, 타 조들은 ‘교육방식’에 대해서 논한 것 같은데 우리 조는 교과서에 서술된 점을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공통점은 세계적인 큰 사건이나, 타 국가의 전쟁이나 자국에 큰 영향력을 미친 사건들은 기술이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차이점은, 중국과 일본의 경우 자국 위주로 기술이 되어있지만, 한국의 경우 당시 주변국가들의 상황과 연계하여 서술이 되어있다는 점이 있었다.


② 흔히 예상하는 그런 많은 이야기가 주로 나왔다. 한자, 불교, 유교, 식문화, 젓가락… 그러나 우리 조에서 ‘독자적으로’ 나온 아이디어가 있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제일 먼저, ‘순장’의 존재다. 권력자의 사후, 그의 권속도 같이 죽여 매장하는 풍습이 한중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여왕의 통치기간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여왕이 부재할 줄 알았는데 고대에 한 명 정도 있었다고 레이쨩이 알려줬다^^. 세 번째로, 근친결혼. 혈통을 지키거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근친, 가까운 친척과 결혼한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음, 아무래도 역사캠프이다보니 ‘역사 속에서’ 공통된 풍습, 문화를 찾고자 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 같이 공유하는 역사적 사건 하나로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눌 수도 있었을텐데 조금많이 아쉽다. (참고로 ‘임진왜란’에 대해서 중국은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일보은 이순신장군을 배우는 곳도 있고 배우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학익진에 대해서 설명이나 해줄걸 그랬다. 중국은 ‘명’ 때 임진왜란으로 차출된 병력이 쇠퇴의 원인이 되었다고 ‘내’가 한국사에서 배웠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는게 이상하고 신기했다. 국가적으로 걸러서 가르치나;;) (참, 고구려와 발해를 세계사의 일부분으로 배운단다. 그래놓고 기념관/박물관 시작을 고구려로 해놓고 설명도 명을 받들어 나라를 세웠다고 써놨다. 어처구니 없어서 그 설명 찍어놨다.) 그리고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했었다. 상당히 두리뭉술한 형태로 어물쩍 동북공정을 넣나보다. 국력 약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설움을 느꼈다. (역사는 결국 힘있는 자들과 인내하는 자들의 것이다. 전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이치이고 후자는 힘없는 자들이나 흥망성쇠에 관계없이 구전되거나 기록되어 널리 그리고 눈에 띄지 않지만 깊이 전해지는 역사다.) (그리고 나는 이제껏 후자의 방식대로, 안에는 전자도 녹아있지만, 우리가 잘 해오지 않았나..하고 생각한다.)


③ 보존해야한다는 입장이 단연 우세했다. (역사를 알리고 실제로 보는 것이 더 현실감이 있다는 주장이 타 조에서도 나왔다.) (중국의 경우 장점은 타 조의 말대로, 단점(보존x)은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의 경우, 사실 잘 진행되다가 내가 조금 빗겨간 질문을 하는 바람에 그 위주로 토론이 진행된 모양이다. (발표 때 일본 친구가 한국 애들이 맺은 결론을 자국이 한 것으로 말했다. 좀 놀랐고 어리둥절했다. 기록이 잘못되어 있는 것을 보고 발표한 것이리라고 믿는다^^) 한국에서는 보존하자는 경우는 피해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유적을 보존하는 편이고, 해야하며, 압력의 주체가 된 것(ex.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총독부)은 민족의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없애는 편이 낫다고 결론이 나왔다. 여기서 ‘내’가 보존에도 여러 방법이 있지 않느냐, 피해입은 현장을 그대로 놔두고 후대에 어떤 국가가 어떤 무도한 일을 했는지를 알리는 것, 혹은 다시 원상태로 재건하는 것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일본 측은 방향을 틀어 이 주제를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히로시마 원폭을 그대로 남겨두는 걸 예시로 들어 그 피해입은 현장을 두고 그 현장이 시간에 마모되어 부서질 시 피해현장을 고스란히 복원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태후닝가, 결국 그렇게 되면 몇 백 년 이후엔 유적이 무슨 상관이냐, 다 사라지고 없어진 것을 새로 지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지만 역사적 의의가 있긴하고..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테세우스의 배 모순이라는 문제랑 같은 관점이다) 그래서 한국 측에서 내린 결론이 시대와 인식에 따라 결국 의미의 부여정도는 다르므로 몇 백 년 후는 그 때의 사람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서 ‘지금’을 살아가며 나름의 의미를 지키고 부여하면 된다, 그러나 정치적 이용에는 경각심을 지녀야하는데 이는 영향력이 크고 전달, 파급력 또한 무시할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라고 나왔다. 이걸 일본측에서 발표한 것으로 해서 매우 놀랐다^^.



<버스 안>


자원봉사하러 와주신 일본인 할머니분들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에서도 그 분들이 가장 강조하셨던 것은 ‘한국의 가능성’이다. (참고로 중, 일 학생들은 한국 주위가 전부 강대국 뿐이라는 사실에 굉장히 아무도 그런걸 인식하지 못하는, 무감각해했다. 말해주고나서야 아, 그렇지..? 라는 반응들이었다.) 특히 저치에서 학생들 대다수가 광장으로 나와, 스피치를 하고,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세상을 바꾸게 된 사실에 대해 상당히 놀라워하셨고 부러워하셨다. (본인들의 세대가 지금 세상을 바꾼 우리의 세대였다고 말씀해주셨다.)



<탄광>


일본인 친구가 음..탄광을 둘러보며, 굉장히 불편한 표정으로 ‘역시 이런 걸 보면’ 일본인에 대한 증오가 생기지 않냐며 물어서,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거짓은 없었다. 실제로 그 때 당시 너무 나도 살고 싶어했을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겁고, 또 어떠한 특정한 사고도 안될만큼 충격적이고 복잡한 심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서 울었다. 한국은 정말 아등바등 살아온 나라다. 어떻게 지금까지 잘 존재하는지 놀랄 정도로, 그리고 우리는, 나는, 역사라는 이름 아래에, 내 것이 아닌 좌절과 분노, 증오, 아픔을 12년간 배워왔다. 그건, 정말 무겁고, 아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평생 갖고, 짊어지고, 후대에 전하는 책임을 다하기엔 너무도 무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선조의 감정과 아픔과 증오를 지고 가는 우리의 힘듦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앞으로 일본사람들이 공공연히 암묵적으로 짊어지기를 강요받을 죄의 무게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어느 것 하나 무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것이 아닌데도 몇 십 년간, 앞으로 몇 백 년, 몇 천 년간 이것이 이어질 것이란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나의 자식이, 자손이, 이 땅이 짊어질, 그리고 아시아의 주요 나라가, 넓게는 아시아가 짊어질 무게가 무겁다. 그게 너무나도 두려웠고, 안타깝고, 나를 소스라치게 만든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우리…’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박에 없었다. 가장 가깝고, 가장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데도 세 나라는 너무나도 멀다. 내 것이 아닌 감정과 아픔을 무의식중에 그 당사자가 아닌 국가의 사람에게 투영하고 있는 나 자신도, 원망스럽고 싫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무게를 어깨에서 그만 내려놓는다는 것이 도대체 뭘 의미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되고, 내려놓아서도 안된다는 것을.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사명이라는 것을 안다. (그때 당시 최선을 다해 지키고자,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그 분들의 사명에는 못미치지만) 또한, 그것을 전하는 것도.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응답. 타국의 반응. 소녀상의 경우에도 철거하라는 압박이 들어오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역사를 통해 좌절을 배우고, 겪고 또 그것을 현실에 투영하고 침잠한다. ‘약함’, ‘가장 못가진 자들이 몸을 바쳐 늘 지켜내는 나라’ 그래서 울어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생생해서, 책으로, 글로 답습하고 배운 무게보다 훨씬 더 무겁고, 아프고, 괴로워서.


‘그러나 그것 또한 나의 일부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과 ‘정’. 한국인의 얼을 이루는 것들에 속해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살고 싶어했고, 되찾고자 했고, 비록 윗물이 더러워도 끝끝내 아랫물이 다 더러워지진 않고자, 깨끗하고자 노력한 선조들이 있었기에.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견디고 시간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존재하는 것이니까. 나의 육체를 이루는 것들 안에 선조의 일부가 담겨있는 것처럼. 나의 정신에도 그 일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공수라도 터진 것처럼 말을 털어놨을 뿐인데 많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일본인 친구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나를 안아줬다.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캠프…학생으로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하는 것이었고 또, 여러모로 나를 바꿨고, 나의 세계를 넓혔다. 아마 다시 이곳에 도우미나 자원봉사로 오더라도 다른 사람을 어른이 돼서 사적으로 만난다더라도 결코 같은 기분, 느낌, 생각으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잘 알기에 너무나도 아쉽다.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 늘 대학에 가서 자유로워지고 싶어했는데 학창시절의 막바지에서야 학생이 좋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유연한 사고, 솔직한 표현 그리고 용기… 이런 걸 지금 깨닫는 건 정말 너무하다. 운명인건가. 너무 짖궂다. 다른 아이들이, 내 후배가 여기에 와서 이런 것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정말 힘들었고 고되고 괴로웠지만 그 이상으로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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