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 7월 29일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랜만에 잠을 푹 자서 그런지 평소에 비해 일찍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꽤 상쾌했다. 단, 비가 조록조록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만 그랬다. 오늘 일정에 내가 정말 기대했던 카누가 있었는데 우천 시 취소되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침식사 후 갔던 현장답사는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 갔던 ‘광현사’는 1934년에 세워진 절이다. 이 절은 아이누가 살던 땅에 일본사람들이 자신들의 절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곳에는 중일전쟁 발발 다음해에 시작된 우류강 댐 건설에 강제노동을 하다 죽은 시체들이 다다미가 썩을 정도로 매일매일 옮겨져 왔다고 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광현사의 주지스님이셨던 분이 그 사람들의 위패를 제작하여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이다. 그 위패에는 일본인과 조선인 등의 희생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1943년 1월 4일 철도공사에서 변사한 21세 경상남도인 진정룡씨, 1940년 12월 2일에 돌아가신 24세 조경복씨 등이 있었다. 이러한 설명을 해 주신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께서는 정부가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자주심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이러한 장소들을 오는 것이 중요하고 한 명 한 명 마음속으로 이분들을 마주하기 바란다고 강조하셨다.


다음으로 호수 옆의 위령탑이 기억에 남는다. 이 곳에서 스님이 이 위령탑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 아니라 비석을 세운 제지 사장의 이름만 적혀있어서 진정한 위령탑이 아니라고 하며 그 다음에 차를 타고 이동하여 본 위령탑이 희생자의 이름을 적어놓은 진짜 위령탑이며 사람모양 동상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어서 억울하게 죽은 마음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에는 조별로 ‘피해자들의 유골 발굴 및 추도 및 봉환운동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주제로 토론을 했다. 한국은 1)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2)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수단으로서 3)전쟁의 폐해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라는 입장을 밝혔고, 중국과 대만은 지금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피해국은 정부가 바뀐 가해국을 단지 하나의 이유만으로 싫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일본은 1)사죄의 의미로서 2)스스로 자각하기 위해서 3)우호관계 회복을 위해서라고 하였지만 일본이 섣불리 사과하지 못하는 이유가 일본 내에서도 의견이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로의 언어를 잘 몰라서 의사소통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서로 답답해서 영어를 사용해서 못알아 듣는 부분이 생기는 점이 불편했던 것 같다.


아직 이틀밖에 안 되서 아직 어색한 점이 없지 않아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꽤 남아있으니까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론도 점차 활성화되어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고 타국 친구들과도 더 친해지기를 바란다. 남은 시간도 무탈하면 좋겠다. ^^


[중학교 3학년 여학생]

오늘 아침에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사실 나는 6시 15분에 누군가의 알람소리를 듣고 깨어났었다가 다시 자서 38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대충 씻고,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어제 미뤄졌던 개회식에 갔다. 한중일 대표 분들의 환영사가 있었고, 도노히라 요시히코님의 90분짜리 강의가 있었다. 중·한 국어로 통역되어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음……. 그 강의는 강제징용 되신 분들의 유골반환에 관한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분이 굉장히 단호하고 힘이 있는 목소리와 단호하신 표정으로 ‘일본 벙부가 아닌 시민들의 노력으로 이뤄졌습니다.’라고 하셨을 때였다. 또 그분은 1938~1943년에 만들어진 댐에 조선, 일본인 노동자분들이 징용돼 강제노동을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여기에서 난 ‘일본인이라고 무조건 가해자고 뭐 그런 게 아니고 그 분들 중에서도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또한 240명 이상의 분들이 댐을 만드시다가 소중한 목숨을 잃으셨고 그 중 50여명의 분들이 한국 분이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노동자분들은 ‘타코베야’라는 감금시스템의 숙소에서 생활하게 되셨는데, 만약 탈출하면 엄청난 폭행이 있었다는 것 또한 알려주셨다.(폭행 당하셔도 바로 노동하셔야 했다.)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인권’이란 건 지나가는 개에게나 준 듯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강도 높은 노동을 하셨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은 국가의 무책임함 속에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반환되어졌다. 그렇게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유골 115구는 비행기가 아닌 살아계셨을 적 징용 되셨던 그 길을 거꾸로 걸어 한국으로 전해졌다.(아! 유골함에 안치되는 사진이 PPT 속에 있었는데 그 사진 속에 ‘70년만의 귀향’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게 감동적이면서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시청에서 한국 고등학생들과 함께 유골의 장례식을 치뤘다 하셨는데 그게 또 다른 감동이었다. 그리고 말을 끝맺으시면서 힘 있게 강조하셨던 말이 기억난다.(통역하시는 분도 이 부분을 꽤 힘주어 말씀해주심ㅋㅋ) 그 말은 ‘유골반환은 한국이나 일본 정부가 아닌 시민이 자주적으로 이뤄낸 일이다.’였다. 그리고서 위패가 모셔져있는 절에 가서 유골도 보았다. 충격+메슥거림+의문의 감정을 한 번에 느꼈다. 그리고서 추모 목적으로 2번 절을 했는데 좀 복잡했다. 그리고서 공동묘지를 갔는데 거기서 묵념을 하게 됐다. 묵념을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그냥 고개 숙이고 눈 감고 손을 모았다. 그리고서 생각으로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서 숙소로 돌아가 점심 도시락을 먹었는데 워- 지금 먹은 모든 식사 중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서 숙소로 돌아와 민경이와 핸드폰게임을 했다. 그리고서 토론을 했는데 중국 담당 통역사분이 늦게 도착해서 꽤 애를 먹었다. 그 뒤에 밥을 먹었는데 처음으로 밥을 거의 다 남겼다. 그 뒤에 조별 토론을 했는데 기억이 안 나서 패스! 그 뒤에 오픈카페 때 할 ‘Cheer up’을 연습했다. 죽기 전까진 춤을 다신 안 추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다. 연습을 다 하고 샤워를 하고 지금 일기를 쓰고 있다.(현 시간 12:33) 오늘 배운 역사이야기가 앞으로 내가 갈 길에 도움이 되었으면.


[중학교 2학년 남학생]

홋카이도에 온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첫날에는 장거리 이동으로 활동이 없었지만 오늘은 활동이 꽤 많았다. 처음엔 어제 하지 못했던 개회식을 하고 그 다음에는 홋카이도 강제징용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닌 일본인들도 강제징용을 당했다는 것에 놀랐고 강제징용을 당해 노동을 하는 장소에서의 방법을 듣고 화가 났다. 그 후 우리는 우류댐에 갔는데 그 곳을 가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 전까지 우류댐이 그렇게 큰 곳 인 줄은 몰랐고 그래서 그들의 노동의 양을 짐작하지 못했다. 그곳을 보고 나는 숙연해지는 느낌을 들었다.


나는 일본사람들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숨기려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특히 놀랐던 것은 광복 70주년 때에 강제징용을 당했던 조선인들이 왔었던 절차를 그대로 밟고 다시 돌아갔다는 것이다. TV에서 보고 주변에서 듣는 일본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일본인들이 한 이 행동은 나의 관점을 바뀌게 해 주었다.


이 활동 후에 또 다른 활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조끼리 모여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곳에서 세상에는 정말 열심히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 활동에서 다들 자기들의 의견을 힘든데도 정말 열심히 말해주고 잘 경험해주었다. 그러한 모습이 나에게는 인상 깊었다.


오늘 활동은 전체적으로 좋았고 내일 활동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둘째 날, “언니들 저희가 꼴찌에요!” 라는 OO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일어나보니 중국과 일본 친구들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정말 부지런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친구들을 깨우고 밍기적 밍기적 밥 먹으러 갈 준비를 했다.


아침에는 낫토가 나왔다. 익히 알고 있던 음식이라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낫토를 과감하게 뜯었다. 일본에 오래 산 다영언니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양념을 비비고, 밥에 올려 먹었다. 맛은, 한마디로 정말 독특했다.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맛이라고 생각했다. 신기한 맛에 꽤 많이 먹었더니, 느끼해서 김치가 먹고 싶어졌다.


간단히 씻고, 어제 받은 단체티를 입었다. 앞에 써져 있는 영어 문구 ‘East Asia Youth History Experience Camp 15th’가 맘에 들었다. 아, 내가 정말 여기에 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어서이다. 어제 밤 2시까지 수다를 떨던 일본, 중국 친구들과 떠들며 강연을 들으러 올라갔다.


시작하기에 앞서, 어제 못했던 개회식을 했다. 그리고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께서 오셔서 강연을 해 주셨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유골반환을 해 오신 이야기셨다. 한 마디 하시면, 통역사 두 분이 중국말과 우리말로 통역을 하셨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대충 3배 정도 많이 걸렸다. 통역사 분들도 많이 힘들어 보이셔서 안타까웠다. 한국에 유골을 안치할 때 10일 정도, 운송하는데 걸린 그 시간 동안 많이 떨리고 마음이 힘드셨다고 하셨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강제징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쌀쌀한 슈마리나이의 낮, 우리는 고겐지(광현사)로 갔다. 그곳에서 위패를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해주셨는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훨씬 와 닿고 느껴졌다. 21살, 24살들의 청년들이 수많은 이유로 죽어 나갔다는 게 너무 슬펐다. 그리고 스님의 표현 그대로, 우리는 유골을 만났다. 정말 실제의 사람 뼈를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한분은 국적, 사유, 나이 전부 모르고 한분은 담배에 써진 걸로 이름을 알았던 일본 분이셨다. 이것이 역사속의 먼 이야기가 아닌, 내 앞에 놓인 것이라는 것이 다가왔다. 내가 지금 역사를 보고 있다는 것에 신기하고, 숙연해지고, 마음 아팠다. 그리고 그 문제의 우류댐으로 갔는데, 추모탑에 희생자의 이름이 단 한 개도 없고, 사장의 이름만 떡 하니 박혀있는 것을 보고 정말 추모하기 위한 탑이었을까? 청말 추모하긴 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유골 발굴 현장에 갔다. 빈 한국식 무덤에 언젠가 누군가가 묻혀 편히 쉬시기를 바랐다. 민간단체에서라도 이런 일을 해 주어서 정말 다행이고 고맙다고 생각했고, 민간인들이 많이 도와주고 협조해준다고 하셔서 나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좋겠다.


조끼리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고, A, B, C, D팀으로 나뉘어 피구를 했다. 너무 쉽게 져서 아쉬웠지만 다른 나라 친구들과 협동해 운동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상품으로 초콜릿까지 받아서 기분 좋게 끝났다. 숙소에 와서 일본 친구들과 한국 게임인 ‘아싸 홍삼’과 ‘아이 엠 그라운드’를 했다. 일본 친구들이 한국 놀이를 너무 잘 익히고 재미있게 해 주었다. 다음엔 일본 놀이랑 중국 놀이를 배우고 싶다.


저녁 이후에는 조별 토론을 했다. 오늘의 소감을 간단히 말하고 강제 징용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조엔 일본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한국 친구에서 2명, 중국에서 2명, 일본 친구들까지. 그리고 통역하시는 분들이 2분이나 계셨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이 진짜 많이 부러웠다. 한국에 가면 꼭 일본어를 공부할 것이라 다짐했다. 사람과 교류하는데 언어능력이 많은 역할을 미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년에 일본어를 배워서 다시 캠프를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유창한 일본어를 구경했다. 조별 토론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일본의 언니가 “그 현장에 있을 때, 마음이 아팠고 힘들었다. 왜 교과서에서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는 가 궁금하다. 화가 났고, 죄송하다.”라는 내용의 말을 했다. 나중에 언니에게 따로 말하긴 했지만, 언니는 사과할 필요가 없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생각과 관점이 있다고 느끼고, 표면에 드러나는 몇몇 사람의 관점을 일반화시켜서 적용하면 안 된다고도 느꼈다. 또,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은 단순히 가해자고 다른 나라는 피해자 이런 방식으로 구분 지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낮고 약한 사람들은 역시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똑같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강자의 힘을 약자에게 나쁘게 사용하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예이다. 한마디로, 이것에 접근할 때 일본이 다른 나라에게가 아니라 강하고 높은 ‘강자’라는 사람들이 약하고 힘없는 일본과 한국과 중국, 다른 나라의 ‘약자’에게 라는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자국민들에게조차 사과와 인정, 보상을 하지 않는 회사와 국가는 반성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 같이 모여 발표를 했는데, 너무 당당하고 말을 잘해서 놀랐다.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만약 한국인들만 있었으면 아무도 나가지 않았을 것 같았지만, 일본과 중국 친구들이 단상에 나가 말하는 모습에 그런 자세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픈카페와 장기자랑을 준비하고, 씻고 방에서 일본 친구와 단체 사진을 찍고 셀카도 찍으며 느지막히 잠들었다. 슈마리나이에서의 마지막 밤을 재미있게 보내서 너무 좋았다. 내일이 너무 기대되고 이곳에서의 시간은 한국보다 2배 빠른 것 같다.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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