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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본문내용>
…막말부터 명치에 걸친 시기에 오랫동안 청의 조공국이었던 조선은 국가로서 약체화되었다. 조선이 강대한 대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자국의 위협으로 될 것을 두려워하였던 일본은 조선을 둘러싸고 여러차례 청국과 싸워 일청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일로전쟁 전에는 러시아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여 신중한 의견을 내어 ‘恐露病’이라고까지 말을 들었다. 한편 한국 통감부의 초대 통감을 맡았던 伊藤는 일본의 조선지배의 상징적 인물로 비춰져 있었다. 伊藤는 1909(명치42)년 일로전쟁 후의 극동문제를 러시아와 협의 말을도상에 하얼빈 驛頭에서 조선의 운동가에게 피스톨에 맞아 암살되어 파란만장한 인생을 닫고 말았다.(192-193쪽)
<수정의견>
청일, 러일전쟁 및 일본의 조선침략이 일본을 방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일본은 그 이전에 이미 확고한 조선침략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한국통감부’라는 공식 명칭은 없었다. ‘통감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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